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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가 만난 인도인




지난 여행에서 엇갈린 인연으로 남게 된 인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매력의 땅으로 기억된다.


네팔과 인도의 국경 도시 소나울리에서 인도 버스로 갈아탄 뒤 바라나시로 향하는 길. 큰 배낭은 버스 위에 실었지만, 버스 안에 가지고 탄 짐의 무게도 큰 배낭 못지 않았다. 덕분에 기동력을 상실한 나는 버스가 쉬러 들른 곳에서도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고 버스 안에 멈춰 있었다. 다시 버스는 어느 이름 모를 도시에 섰고, 배가 고팠던 내게 차창 밖으로 눈에 띄는 사내가 있었다. 가판대에서 계란과 빵을 만들어 파는 남자였다.


네팔인들도 그렇지만 인도인들의 눈썰미는 특히 예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버스 안 외국인의 눈에서 뭔가를 캐치한 그는 버스가 자신의 옆에 서자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뭐 줄까?’하는 느낌의 인도 말인지 인도 식 영어인지 모르는 말과 함께.


그에게 무척 맛있어 보이던 삶은 계란 하나를 달라고 그랬다. 그러면서 가진 인도 루피가 큰 돈 밖에 없는데 거슬러 줄 수 있냐 물으니 두 개를 사면 거슬러 줄 돈이 된다는 식의 시늉을 한다. 배는 고프지만 피곤한 데다 짐 때문에 버스에서 나가기 싫었던 나는 큰 값이 아니라 그렇게 하기로 하고, 더 산 계란 하나는 내 옆에 앉았던 티베트 승려에게 건넸다. 그런데 계란 장수가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미 열 몇 시간 동안 포카라에서 소나울리로, 소나울리에서 다시 바라나시를 향해 가고 있느라 지쳐 있던 나는 더 피곤해지기 싫어서 웃으며 잔 돈 달라 말했다. 그 사이 그의 가판은 내가 탄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과 다른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계란과 빵을 사먹기 위해 몰려들어 붐비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란장수는 차에서 내려 빵과 계란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곧바로 잔돈을 거슬러 주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서 반복해 돈을 달라 했다. 그럴 때 마다 계란장수는 고개를 숙인 채 계란을 부치거나 삶은 계란에 향신료를 바르며, 한 손을 들어 손바닥 세워 툭툭 앞으로 밀면서 기다리라는 식의 표현을 한다. 하지만 기다려도 계란장수는 계란과 빵 파는 데만 여념이 없었다. 버스가 떠나기 전 내려서 잔돈을 받을까, 계속 기다릴까 망설이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진짜로 내 잔 돈을 차창 아래에서 건네준다. 당연한 거고, 어쩌면 바로 줄 것처럼 말했다 한참을 시간 끈 뒤에야 거슬러 준 거니 화를 내도 될 판인데 순간 고마운 느낌까지 들던 건 뭔지….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계란장수는 여러 사람들에게 빵과 계란을 팔며, 내가 준 큰 돈에서 계란 두 개 값을 치르고 거슬러 줄 돈을 손님들로부터 모으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제서야 화가 좀 풀리며 이게 인도인들의 방식인가 보다 하며 속으로 웃고 있는데, 창 밖에서 다시 계란장수가 날 부른다. 잔 돈 받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창 밖으로 그곳의 풍경을 몇 장 찍는 걸 봤는지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손짓과 함께.


결국 사진 한 장을 찍는 것으로써 조금만 더 성질이 급해졌거나, 나의 컨디션이 좋았거나,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짐의 양이 적었다면 내려가 얼굴 붉힐 수도 있었던 상황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밤이라 플래시를 터뜨려 찍었기 때문에 잘 나온 건 아니지만, 사진 속 그의 생긋 웃는 모습은 수학의 나라 사람답게 계산에 능하고 재치 있는 인도인을 보는 것 같아 이번 여행 속 소중한 사진 한 장으로 남았다.






바라나시로 가는 길, 내게 계란과 함께 오해와 기쁨도 함께 줬던 계란 장수




이 계란 파는 사내와 심리적 실랑이가 있던 사이 버스 차창 밖에서 나에게 인사하는 또 다른 인도인이 있었다. 그는 그날 새벽 포카라의 버스파크에서 소나울리 행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매점 테이블의 내 옆에 와 앉았던 인도인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어디론가 갔다 올 테니 자기 짐을 맡아달라는 말을 했었고, 소나울리 행 버스를 타면서는 자리가 멀어져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소나울리에 도착한 뒤에는 그도 바라나시로 가기 위해 같은 버스를 탔던 것이고, 창 밖으로 잔돈 받으려고 얼굴 내밀고 있던 나를 발견한 거였다.


그는 한 손에 막 사 갖고 온 스프라이트를 들고 있었는데, 높이 들어 보이면서 나도 먹겠냐는 시늉을 한다. 화장실 관리 상 생각은 없었지만 마음을 생각해 그러겠다 하니 자신이 마시려고 샀던 스프라이트를 창 밖에서 건네고는 하나 더 사려고 매점 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는 차에 오르자 마자 버스 맨 앞 자리에서 엄청난 짐에 눌려 앉아 있던 내게 다가와 또 어려운 인도 식 영어를 말했고, 나는 못 알아 들었지만 스프라이트 고맙게 잘 마시겠다 말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인도인에게 받은 최초의 친절이었다.


기나긴 시간을 달려 바라나시에 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예정 도착 시간이었던 아침 5시가 아닌 새벽 2시였다. 인도의 버스 시간이 잘 안 지켜져 늦어진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무려 세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니 놀랍기까지 했다.


문제는 바라나시에 도착하면 류시화 시인님한테 연락해 숙소를 잡으면 된다는 계획이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 때문에 무너진 거였다. 새벽 다섯 시쯤에 일찍 일어나시는 시인님의 패턴을 알고 있긴 했지만, 새벽 두 시에 문자 보내기는 망설여졌다.


하룻밤 만이라도 아무 숙소에서나 눈을 붙인 뒤 아침에 연락하자는 계획으로 바라나시 버스 정류장 근처 숙소를 찾아 나섰다. 이 때부터 정열적으로 나타나는 릭샤 드라이버들과 호객꾼들을 모두 뿌리치고 숙소를 찾아 걷는데 유독 집요하게 따라오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말에 별로 대구도 안 한 채 정류장 근처에 보이는 숙소 간판 켜진 곳 마다 들어가 봤지만 다들 방이 찼다고 한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지 자신이 안내하는 곳으로 가자며 계속 따라오는 호객꾼.


낯선 곳 어두컴컴한 새벽에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친구만큼은 피하고 보자는 생각에 몇 번 버럭 소리를 질러 쫓아냈다. 그리고는 다시 한 숙소의 현관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개가 “깨갱”하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그 호객꾼이 자고 있던 개를 패고 있는 게 아닌가. 열심히 날 따라왔지만 끝내 뿌리치니 그 화풀이를 죄 없는 개한테 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이 무척이나 뜻밖이고 놀라워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날 새벽, 바라나시 버스 정류장 근처 숙소들은 하나같이 방이 찼다고 해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무거운 짐으로 인해 그렇잖아도 더운 그곳에서 땀은 비처럼 흘러내렸다. 다른 숙소 촌으로 가야겠다 생각해 오토 릭샤를 잡아 어디로 가겠냐는 드라이버에게, 그가 말한 곳들 중 한 곳을 지명해 가자고 했다.


네팔에서 사이클 릭샤만 타다 오토 릭샤는 처음 타보는 거였는데, 드라이버가 지나가다 보이는 인도인 앞에 멈춰 뭐라고 말하면서 합승을 시킨다. 내 옆 자리가 아닌 앞의 드라이버가 앉은 왼쪽 편에 턱, 하며 걸터앉는 인도인. 그리고 얼마 뒤 걸어가던 한 사내와 드라이버가 말을 나눴고 그도 역시 합승을 했다. 그 또한 내 옆자리가 아닌 드라이버의 오른 편 옆자리에 걸터앉듯이.


최악의 경우 이 녀석들이 한 패거리로 나를 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어 만반의 준비를 다지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긴밀하게 살펴보는데 뭔가 인상한 느낌이 와 오토 릭샤의 백미러를 보게 됐다. 그랬더니 합승한 왼쪽의 인도인이 백미러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는 백미러 속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행히도(?) 고개를 돌려준다. 그런가 보다 하며 다시 나도 모르게 다른 한 쪽의 백미러로 시선이 가자 이번에는 합승한 다른 인도인이 또 다른 쪽 백미러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백미러의 방향을 돌려 나를 더 잘 보겠다는 듯이 백미러를 손으로 잡은 채.


백미러 속에서 본 그의 매부리코와 콧수염 낀 미소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도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나니 묘하게 웃음지으며 고개를 돌리긴 했다. 날 더 잘 보기 위해서 방향 트느라 손으로 쥐고 있던 백미러의 방향도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으며…


그 짧은 순간들이 무척 기묘한 느낌이었다. 마치 이소룡 주연의 “용쟁호투”에서 이소룡과 적이 혼란스러워 하며 거울방에서 싸우던 장면처럼, 한 쪽 백미러를 보면 한 인도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고, 다른 쪽 백미러를 보면 또 다른 인도인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낯선 땅에서의 순간들…


그날 새벽, 또 한 명의 인상 깊었던 인도인은 릭샤 타고 도착한 호텔촌의 호객꾼이었다. 릭샤에서 내리자 마자 씩씩하게 걸어와 자기가 알고 있는 좋은 호텔로 가자고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있고 혼란스러웠던 나는 제일 먼저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당연히 그의 대답은 “완 미니뜨”다.


일분이란 말은 믿지 않았지만 조금만 더 걸으면 나오겠지 하면서 그를 따라 갔다. 그런데 왜 나를 인도하는 호객꾼이 있는데도 중간에 다른 호객꾼이 나타나 더 좋은 곳이 있다 말하고, 기존 호객꾼과 새로 나타난 호객꾼 간에 인도말이 오가더니 방향을 틀어 이미 걸어왔던 길로도 거슬러 가며, 또다시 다른 호객꾼이 붙어 방향이 달라지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왜 기존 호객꾼들과 새로 나타난 호객꾼들은 다투지도 않은 채 함께 나를 새로운 곳으로 안내하는 것인지도…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곁에는 호객꾼만 네다섯 명쯤으로 불어났다.


도대체 이들이 뭘 원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잖아도 힘든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며 이리저리 걷게 했다가 만에 하나 한 패가 돼 나쁜 짓을 하려 하면 매고 있던 큰 배낭은 이 녀석들에게 던져 버려 호통이라도 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호객꾼 무리를 따라 가다 보니 드디어 바라나시의 유명한 미로를 만났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 미로 길이 바라나시의 상징인지 몰랐다. 단지 호객꾼들이 좀 전과 달리 아주 비좁고 구불구불한 길로 나를 데리고 들어간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부터 가는 방향보다 지나온 방향을 기억하기 위해 신경 썼다. 더 깊어지면 뿌리치고 미로 길을 벗어나 큰 길로 도망가기 위해서.


미로 속 또 다른 미로로 꺾이는 한 지점에서 내가 머뭇거리자 제일 먼저 내게 다가왔던 호객꾼이 “노 프라블럼!” 하며 손을 저어 안심시킨다. 그렇게 몇 번 더 꺾어져도 숙소가 나오지 않자 더는 못 참고 성질이 나 소리치고는 돌아서서 미로 길을 쏜살같이 빠져 나왔다. 뒤에서는 여전히 호객꾼들이 쫓아 온다. 네다섯 명으로 무리 지어진 호객꾼 모두가 나를 따라서…


겁이 나는 와중에 미로 길을 벗어나는데 마침 누런 제복 차림의 경찰이 보였다. 나는 경찰을 보자 마자 “이 녀석들 나쁜 사람들이니 쫓아 달라” 말했다. 그러자 경찰이 무슨 일이냐는 듯이 그들을 향해 말하는 것 같았고, 이 때 한 두 명의 호객꾼이 사라졌다.


여전히 남은 호객꾼들이 쫓아오자 또다시 만난 큰 길가의 경찰에게 똑같이 말했다. 이 사람들 쫓아달라고. 그러자 경찰은 나에게 앉으라며 플라스틱 의자를 내민다.


그렇잖아도 한참을 걷느라 너무 더웠던 나는 경찰 제복과 어깨에 맨 장총만을 믿고 그가 내민 의자에 앉아 상황을 설명했다. “이 녀석들은 거짓말쟁이이며 이 녀석들 때문에 무지 덥다” 말하는 내게 경찰은 물 한잔 마시겠냐 하고, 나는 경찰이 장사치들과 한 패거리라 내미는 물 속에 뭘 타지는 않았을까 싶어 마시고 싶었는데도 괜찮다 말하고… 이런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 속에서 끝까지 따라왔던 호객꾼들 모두 사라진 채 딱 한 명의 호객꾼만이 남아 있었다. 릭샤 타고 그곳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붙었던 호객꾼이었다.


경찰은 호객꾼에게 나를 무슨 게스트하우스로 안내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군말 없이 호객꾼이 나를 또 다른 곳으로 안내한다. 처음 그 호객꾼의 말처럼 불과 일분 만에 도착한 어느 게스트하우스.


그곳에서 바라나시의 첫날 밤, 나는 드디어 포카라로부터 떠나온 긴 여정의 무겁고 벅찬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따라 방을 보고 내려오자 프런트 앞에 죽치고 앉아 알 수 없는 힌두어를 중얼거리며 기도하고 있는 듯 하던 호객꾼에겐 화를 내면서도 루피 한 장을 건넸다. 일분 만에 올 수 있는 이곳을 놔두고 왜 이상한 곳으로 안내해 힘들게 했냐는 조롱과 함께.


그런 내 말을 알아나 들었을까? 호객꾼은 뜻밖인지, 혹은 보수를 챙기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인지 모를 행동으로, 받아 쥔 루피를 자신의 이마로 가져가 붙였다가는 호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어쩌면 수많은 호객꾼들 사이에서 처음에 나를 발견하고 붙었던 그 호객꾼은 운명적으로 나의 루피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신기하게도 그는 화가 잔뜩 나 있던 나로부터 루피를 챙기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날 만났던 인도인들은 현실이 아닌 마치 한 편의 영화 속 사람들처럼 신비롭기까지 한 이들로 기억하지만, 특히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인도인들은 순간순간 여간 많은 오해를 준 것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힌두의 오래된 도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