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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네팔의 달밧


네팔의 달밧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가본 지역이나 가정마다 맛이 천차만별이었다. 특히 동쪽의 일남이나 서북의 무스탕 같은 산악지역의 달밧은 맛과 방식이 가장 특이했다. 산악지대에 많이 사는 몽골계 주민의 문화적 색채가 섞이고, 고산지대의 환경적 특성이 더해진 달밧이기 때문일 듯 하다.

산악지대의 달밧이 평지-분지에서 먹는 달밧과 먼저 달랐던 건, 달과 함께 한 가지 반찬에 밥을 먹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달(녹두콩 수프)과 밧(밥)을 기본으로 해 감자나 채소로 만든 떨꺼리(볶음), 어짜르(짱아찌), 쳐트니(절임 요리로 주로 잘게 간 채소들과 토마토를 믹싱해 만든다)가 곁들여지고, 치킨꺼리가 얹어지는 네팔리 달밧 세트는 무스탕 지역의 평범한 식당들에선 찾기 어려웠다. 주로 게스트하우스들이 함께 운영하는 고급 식당에서 평지에 비해 비싼 가격에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한편, 산악지대에서는 채식 반찬들 보다도 치킨 요리를 만나기가 더 어려웠는데, 해발 2,500미터~2,700미터에 위치해 있는 칼로파니에서 어렵게 찾아내 먹은 치킨꺼리는 네팔에서 먹은 치킨 요리 가운데 가장 특이했다. 국물이 묽고 더 많아서 꼭 우리나라의 백숙 같은 느낌을 줬으며, 국물 위에 진하게 뜬 지방은 고산지역의 추위를 견디게 하는 열량 공급원인 양 감기에 걸려 뜨끈한 게 먹고 싶던 내게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먹은 치킨꺼리의 구수하고 담백한 국물 맛은 한국인들의 입맛에 잘 맞을 듯 하다.

그런가 하면 산악지대의 닭은 육질이 무척 질긴 편이다. 그간 네팔의 도시나 시골 마을에서 먹은 치킨 요리들은 닭가슴살 같이 기름기 적은 부위 조차 부드럽게 씹히도록 요리해 놀라곤 했는데, 무스탕 지역에서 먹었던 치킨들은 다리나 날개 부위처럼 기름기가 적당히 섞여 부드러워야 할 부위들 조차도 질겼다. 높은 고도와 추위의 영향으로 닭의 품종에 차이가 있는 건지, 조리법의 차이 때문인지 궁금한 대목이었다.







아래 쪽 첫번째 사진이 칼로파니에서 먹은 치킨꺼리이다. 국물이 많은 것은 물론 맛 또한 한국의 백숙을 닮았다.



네팔에서 먹은 달밧 가운데 베스트를 꼽으라면 탄신에 갔을 때 네와르 식당에서 먹은 달밧을 꼽겠다. 네팔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네와르 인들은 네팔의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가장 다양하고 독특한 음식 문화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탄신에는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더 고급스러운 식당이 있으며 그곳을 나 또한 방문했었지만, 그날 아침 우연히 들른 허름한 식당에서 고작 80루피를 주고 먹었던 달밧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을 만큼 각별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멸치볶음 같던 어짜르는 그곳에서만 먹어본 반찬이었고, 쳐트니 역시 입맛을 돌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밋밋한 맛이었던 "달" 역시 뭔가 입맛에 착 감기게 하는 듯 한 그 집만의 풍미가 있었다.

네와르 인들의 음식은 전체적으로 인도 음식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아리안계 인들 음식에 비해 향신료의 향이 조금 더 적고 매콤한 맛이 더 가미된 듯 하다는 느낌이었다. 이 때문에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더 잘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탄신의 이름 없는 네와르 식당에서 먹은 달밧 셋트.
가장 잘 하는 요리가 뭐냐고 묻자 자신 있게 "달밧"이라고 하길래 믿고 주문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네팔리 정식, 혹은 네팔의 백반이라 할 수 있는 "달밧"의 이름은 하나이다. 그러나 그 맛은 지역과 민족, 가정의 환경이 섞이고 발전해 온 탓에 결코 하나의 맛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 안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훌륭한 채식 음식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물론 고기로 만든 음식을 풍족하게 누리며 살아온 한국인이나 외국인들에게는 치킨이 가미된 달밧이 더 근사할 수 있다. 또한 네팔인들 역시 축제와 같이 특별한 날에는 치킨과 염소 고기를 곁들인 달밧을 먹는다. 하지만 몇 가지 고기 요리가 곁들여진 달밧 안에서도 더욱더 중심이 되는 고유의 테마는 언제나 채식이다. 녹두콩으로 만든 달과 라이스, 감자와 브로컬리를 향신료와 소금 등으로 간을 해 해바라기유에 볶아낸 떨꺼리, 채소들을 절여낸 어짜르와 마치 한국의 젓갈을 연상시키지만 생선 없이 채소로만 만든 쳐트니, 그리고 즙을 짜내 반찬에 뿌려 먹을 용도로 나오는 레몬, 간을 하지 않은 채 입가심 용으로 생 무나 오이, 홍당무를 썰어낸 것들 까지 채식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달밧이고 현대인들의 고열량 식습관에 대해 '평생 이렇게 먹고 살 수도 있다'고 힌트를 주듯 달밧은 어느 한 작은 나라의 사람들에게 주식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처음 네팔에 왔을 때 나의 주식은 “짜우멘”(티벳에서 전해진 볶음면)이었다. 그러나 나도 이제 어느덧 달밧에 익숙해져 짜우멘은 거의 먹지 않고 달밧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 가면 달밧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