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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네팔을 침투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


보비가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인도와 영어권의 채널들이 방송되고 있는 네팔에서 일본 방송도 방영되냐 물으니 나오지 않는단다.(보비 집의 경우..) 그런데 한번은 한국 방송을 보고 한국말 하나를 배웠다며 말한다. "우빠".

무슨 뜻이냐고 묻는 보비에게 "우빠"는 모르고, 혹시 "오빠" 아니었냐고 하니 급히 정정해 "오빠"라고 발음하면서 맞단다. 그런 그녀에게 "오빠"란 말은 네팔 말로 "다이(브라더)"라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많은 한국남자들이 여자친구로 부터 "오빠"란 말 듣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왜 그렇냐고 묻는 보비에게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후, 너도 가끔은 나에게 "오빠"라고 불러달라 농담을 건넸다. 난 사실 여자들이 오빠라 부르는 거 좋아하지 않는 희귀종이지만 어찌하다 보니 한국말과 한국문화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런 대화까지 가게 됐다.

그런데 보비는 "노노!"라며 가끔 오빠라고 부르라는 내 얘기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싶어 다음날 다시 통화하며 혹시 전날 내가 "오빠"가 네팔말로 "다이"라고 한 걸 영어로 이해했던 것 아니었냐 물으니 그랬다고. 다시 "네팔말로 다이"라고 강조하면서 설명했더니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할랍 오빠"라고 한다.

보비가 "오빠"란 말을 배웠다는 한국 방송의 출처가 궁금해 영화였는지 쇼였는지 물었다. "댄싱"이었단다. 추측하기로 예전에 왁스가 "오빠"란 말을 반복하며 불렀던 노래를 듣고 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국에 대해서는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 말고 관심 없는 보비의 경우에도 가끔 한국 방송을 본단다. 보비 집에 갔던 어느날 저녁을 먹는데 보비가 한국 방송이라며 틀어준 채널은 한국의 "아리랑TV"였다. 그 외 다른 방송들이 네팔에서 직간접적으로 더 소개되고 있을 수도 있다.

또 한번은 보비 집에 갔다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차가 끊겨 동네 청년의 오토바이를 타고 게스트하우스까지 간 적이 있었다. 영어를 아주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스타일로 멋지게 하는 청년이라, 좋지 않은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귀에 쏙쏙 들어와 오토바이 타고 가는 내내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로 부터 들은 얘기가 하나 있었는데, 과거에는 네팔 젊은이들이 힌두 영화를, 그 뒤에는 미국 영화를 많이 봤지만, 지금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봐 젊은 친구들이 한국 패션을 많이 하고 다닌다는 설명이었다.

카트만두나 포카라 같은 큰 도시의 번화가를 지나다 보면 젊고 예쁜 네팔 여자아이들이 스키니진 입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처음에 네팔에 와 그런 모습을 보고는 대체 저런 패션이 어디서 들어왔을까 궁금했는데, 이 역시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이었단다. 특히 젊은 네팔 여성들이 사랑 얘기가 많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내 마음은 뿌듯하다거나 좋지 않았다. 네팔을 여행하며 나는 오히려 원색의 통 넓은 바지를 입고 굽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평평한 슬리퍼를 신은 채 비포장길을 걸어가는 네팔 여인들을 보며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들의 신비로움과 자연스러움은 결코 사진기 같은 기계 따위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그곳에 서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던 특별함이었다.

나는 보비가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를 일본이라고 말한 것이 좋다. 그리고 그녀가 또래의 다른 젊은 여자애들과 달리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자주 보지 않고, 한국에 대해 무관심한 것 역시 좋다. 달콤하고 낭만적으로 보일지는 모르나 실은 그것들이 많은 부분 허상이며, 특히 한국 드라마나 영화 속 남자 출연진들이 말 하는 방식과 행동은 폭력적일 때가 많다고 설명해 주지 않아도 되니까.

네팔만이 가진 색채와 아름다움이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