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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맛사지 그것은 신이 인간을 빚을 때의 설레임 도공이 도자기를 빚을 때의 혼령 그 정성과 손길을 타고 솜사탕으로 솜을 해 넣은 이불 위에서 잠에 빠진다 더보기
내 안의 양파 상하기 시작한 양파의 껍질처럼 나의 영혼도 하나하나 까발겨져 호도만한 알맹이 만큼이라도 남으면 좋겠다 어디까지 부폐했는지 매끈한 속살 남아나 있는지 나는 나를 볼 수 없기에 당신이 나를 까주면 좋겠다 더보기
고독 보여지는 것들 앞 눈을 감아 보지 않고 들려지는 것들 뒤 귀를 막아 듣지 않는 씌어지는 것들 위 펜을 버려 쓰지 않고 버려지는 것들 밑 그물 널어 모두 잡네 더보기
보고 듣고 싶은 것 서울의 밤하늘 보이지 않는 별 보려 망원경을 준비하듯 산에서 보이는 별들 밑 숨어 보지 못한 것 보려 눈을 감는다 커피집 떠들썩하게 들리는 수다 속 숨은 소리 듣고자 이어폰을 끼고 들리지 않는 파도 소리 듣고 싶어 나는 내 귀를 막는다 더보기
짧은 여행 빗소리가 없었지만 나가니 부슬비가 내린다 기분좋게 맞으며 슈퍼로 향하는 길 어느 집에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그간 비가 많이 왔지만 풀냄새는 황홀하다 마당 쓰는 아주머님 지나 다녀온 칠,팔 분의 짧지만 행복했던 여행 더보기
선물 민박집 아저씨가 싸준 막 수확한 열매 험한 길을 타 사람도 가게도 없던 곳 물도 없이 끝없는 오름을 오르다 까먹은 탈수를 막고 나의 지친 혈액 속에 당이 되어 흐르던 누군가에게 진한 선물을 하고 싶다 나의 목마르고 쓰러질 것 같던 가을날 제주 감귤의 추억처럼 잊혀지지 않을 인생의 선물 더보기
을밀대 냉면 내리쬐는 태양으로 부터 옮겨붙은 더위는 벌초 간 선산의 가을볕 보다 상쾌하다 눈부신 햇살 받은 사람들 모습 물냉면 속 살얼음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날 나는 하루종일 그곳 냉면이 당겼다 굵직한 메밀 면발 뚝뚝 끊어져 밀려오고 보정 안 된 사진처럼 투박해 뱉어내고 싶던 처음 먹던 날의 쓰라림 어느 새 가을의 초입에서도 떠나가지 않는 인연이 되어 그곳 냉명은 내게 닝닝한 육수 맛 만큼 편안한 고향 어느 할메가 멧돌 갈아 내놓던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변했다 햇살 강한 가을 길목 앞에서 반짝이는 사람들의 모습 듬뿍 담긴 그곳 냉면 다시 그립다 더보기
쌀과 밀 햇볕은 세상에 쌀과 밀을 주었고 밀꽃 익자 신은 빵 굽는 법과 면 삶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면이 빵을 밀어내며 이따금 국수는 잘 지어진 쌀과 함께 나의 식탁에 오른다 쌀과 밀로 축복 넘치는 상 신이 주신 만찬 더보기
와인 점원이 추천해 줘 산 이름 모를 스페인 산 와인 목넘김이 좋다 언제 마셔도 부드럽고 기분 좋은 술 와인은 뒤탈도 없다 내 일상의 사람들도 딱 와인 같으면 좋겠다 더보기
시인을 만나고 와 와인 몇 모금에 골아 떨어지는 저질 체력 마저 기쁜 새벽 아침까지 잠들지 못하게 날 깨우는 새벽 마눌님들이 계심을 가을의 신비로움으로 남겨두며 추억하는 저녁 설레임 더보기
운명 무슨 운명이 내 별에 와 닿았길래 신기가 떠나가지 않을까 점쟁이가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불쑥불쑥 찾아와 상영되는 미래 나의 운명은 보지 못하나 남의 것은 잘도 보는 운명 도둑놈 돈 안 받고도 점치는 영혼의 점쟁이 더보기
해장 속 쓰릴 땐 미인 보다 라면이 그립다 함께 술 마실 땐 몇 병 마시다가도 홀로 마실 때는 한 병도 힘들어 하는 속 술은 왜 여러 사람과 마실 때 연해지는가 더보기
한가위 풍년 저녁을 두유로 해결했더니 트림할 때마다 콩냄새가 올라온다 내 속에 콩이 자라고 있는 듯 가을은 벼만이 아닌 내 안의 콩까지 남김없이 수확하는 계절 콩이 익는다, 되새김 되며 콩밭의 풍년 북을 치며 꺼억꺼억 세상에 알린다 더보기
영천시장 어묵집 고교시절 서대문에서 독립문 사이 영천시장 지나며 사먹던 어묵 막 빚어낸 따뜻하고 동글동글한 친구 둘과 만두 백개 해치우던 시절 아르바이트 마치고 오는 길 늘 배가 고팠지 아저씨가 더 얹어줘도 항상 부족하던 그곳 영천시장 어묵집 더보기
장수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는 비아냥에 침묵할 수 있음이야 말로 장군의 덕 아니겠는가 누가 진정한 전사인가 아무 때고 화살을 쏴대는 겁쟁이 궁수들인가 비처럼 퍼붓는 화살들을 맞고도 버틸 줄 아는 그의 침묵인가 더보기
커튼에 가려도 삶이 커튼을 내려 감추려 해도 나는 그 안 당신을 본다 한번 보고 만나지 못할 운명이어도 기억의 앨범에 담아 꺼내보고 기억조차 말라 잊혀질 때 흐르는 피에 섞여 온 당신 힘으로 커튼을 연다 그때 또 당신을 보리라 시로 태어나 반짝여줄 당신과 나의 추억이 빚어내는 환생 더보기
어느 가을 반한 여인 지나가며 만난 여인은 스마트폰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곳이 어디였을까 버스를 기다리는 데였나 버버리 코트를 입고 있었을지도 스카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신비에 가려진 여인 기억에 잡힌 단 하나의 모습 기다란 손가락은 똑같이 생긴 사람들 사이 문을 열고 들어가 당신을 볼 수 있던 열쇠 그 손가락의 우아한 춤을 따라 나의 가을 오후는 밝혀지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흐릿한 흑백사진처럼 남는다 더보기
어느 모기의 죽음 가을 모기 하나 모기향에 취해 아이폰 위 떨어져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모기의 터치에 놀란 아이폰은 "Star Walk" 어플을 켜고 모기의 삶은 별자리 사진 속 화석처럼 남은 채 유성이 되어 떨어진다 허블망원경이 사라지는 별을 기억해 다음날 아이폰 "Stark Walk" 어플 "오늘의 별사진"으로 보내오고 많은 이들의 아이폰 속 아름다운 별똥별 모습으로 담겨 나와 사람들의 손을 타고 가슴 안에 저장돼 남는다 더보기
가을의 담배 가을의 담배는 둥글다 원 안에 원이 있어 긴 담배 한 까치를 밤 새 피워도 아침까지 남는 불씨 그 사이 모기들의 여행은 멈추고 낙화하는 요정들을 따라 나의 하루도 눈을 감는다 모기와 함께 피우는 가을의 담배는 삶의 반복처럼 둥글고 그 속에서 또 둥글어 망각의 소용돌이처럼 밤 새 모기와 나의 삶을 태운다 더보기
모스부호 모기와 나누는 모스부호 나는 대양을 건너는 요트 위 무선 전신사 너의 달겨듬이 사랑의 표현이고 삶의 농사인지 알 수 없지만 나누어 주던 나의 피 보다 나눈 뒤에 남는 가려움의 상처가 슬퍼 뚜두두두 모스부호를 친다 내년에 다시 사랑하자고 더보기
이별의 시 PC 프로그램으로 모기가 싫어하는 고주파음을 내 그들을 쫓아낸다 화학전처럼 에프킬러와 모기향으로 숨통을 조이거나 환영의 손벽치기로 압사시키지 않는 내 이별의 노래 돌고래가 돼 초음파로 모기들에게 시를 쓴다 저 멀리 떠나가라는 슬픔의 시어를 더보기
2010년 가을에 핀 꽃 천원에 두 개 하는 양파 친구 배추가 도시까지 오는 사이 튀겨져 포기에 만원이라며 삶을 희롱해도 나의 식탁 한 켠 꽃밭을 만든다 이웃 상추가 종적을 감춰도 배추처럼 주역이 되지 못해도 고기와 음식 속 삶을 던지며 매캐한 눈물 주고가는 둥근 꽃이여 더보기
늪 속의 호수 저녁 먹고 들어와 빠져드는 늪 엄마의 품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생을 잊는 잠 긴 시간 함께 못함을 알면서도 운명처럼 빠질 수 밖에 없는 짧지만 깊은 하루의 호수 더보기
환생을 빌며 저공비행으로 낮게 깔아서 날아오는 가을 모기 나에게 오고 계시기에 그대는 님인가 어서 와요 가을의 요정 두 손 벌려 만남을 준비하고 있으니 힘찬 환영의 박수 한 방 쳐 멋진 환생을 빌어드리리 다음 생에서는 우리 꼭 연인으로 만나요 더보기
에어컨과 형광등 끄지 않고 잠든 가을날의 아침 아침의 시큰한 코는 말한다 곧 들이닥칠 겨울에도 추위를 즐기며 무더운 여름날을 기억하라고 간밤 못 끄고 잠든 아침의 형광등은 말한다 일 하며 낮을 보내더라도 밤처럼 무언가 너를 위해 깨어있기를 꿈을 꾸더라도 늘 너의 시간을 포기하지 말라고 더보기
혼령의 재현 비가 어찌나 많이 오는지. 슈퍼 옆 철물점에서는. 한 사내가 물을 퍼낸다. 하늘의 눈물을. 강물 되어 흐르는 거리. 눈물이 모인 강. 밤새 내 안의 비 범람하자. 떠오르던 갠지스강. 새벽의 혼령이 재현되듯. 오후의 거리는 바뀌어 있다. 더보기
크라잉 프리맨  내 안의 비가 범람한다. 본 적 없는 갠지스 강처럼 흐르는 눈물. 강 만큼 흐르면 카타르시스에 이를 줄 알았는데. 범람하듯 비를 쏟자 재난이 되는 새벽. "크라잉 프리맨(Crying Freeman)". 나는 울면서도 울지 않는 척. 자유인인 척 말한다. 더보기
당신의 영원을 담고 싶은 컵 한 대 맞으면 별 많이 볼 듯한. 아령 만큼 묵직한 컵. 와인 따라 마시다 이에 부딪치면. 술이 확 깰. 쓰임 많을 황동컵. 그의 심장을 담궈 놓으면. 두터운 장독처럼 온기 보존해. 계속 뛰게 할지도 모를. 그와 함께 한 인도식당의 물컵. 더보기
벌레 침묵하는 시간이 싫은 듯. 꿈틀거리는 벌레. 날 가장 사랑해준 여인은. 벌레 지나가듯 간지롭혔다. 열일곱 소녀처럼. 큰 눈 깜빡거리며. 내 얼굴 기어가던 털 많은 벌레. 껌뻑이던 긴 속눈썹 피부에 스며. 잊혀지지 않는 5년 간의 지나감. 더보기
그 때처럼만 누구나 가슴 속 열일곱 처럼. 나와 당신도. 떠나간 그녀도 그 때처럼. 시를 그리워 하고 친구의 말. 한 마디에 상처 받던. 그 나이 같기를. 빵빵한 소년 소녀의 몸 대신. 내 맘 속 그 시절 그리며. 열일곱 숨 쉬는 감성의 가을. 늘 그 때처럼만. 더보기